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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상 (사수사왕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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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

유상은 전한 시대의 제후국인 사수나라의 초대 국왕이다. 원정 3년(기원전 114년)에 상산왕 유순의 아들로, 형 유평에게 상산헌왕의 가계가 이어진 후 동해군에서 3만 호를 분할받아 사수왕에 봉해졌다. 사수왕 재위 12년 만인 기원전 103년에 사망하였으며, 아들 유안세가 뒤를 이었다.

2. 생애

원정 3년(기원전 114년)[1], 상산헌왕 유순의 아들로 태어난 유상은, 아버지 사후 왕가에서 소외된 이복형 유탈(劉梲)이 유발의 죄상을 무제에게 고발하여 상산국이 폐지되는 사건을 겪었다. 몇 달 후 무제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유상의 이복형 유평에게 상산헌왕의 가계를 잇게 하고, 유상에게는 동해군의 3만 호를 분할하여 사수나라를 설치하고 왕으로 봉했다.[2][3][4] 사수나라의 서울은 담(郯)에 두었다.[5]

사수사왕 12년(기원전 103년), 유상은 죽고 아들 사수애왕 유안세가 뒤를 이었다.[6]

2. 1. 상산국 폐지와 사수왕 즉위

원정 3년(기원전 114년)[1], 아버지 상산헌왕이 죽자, 왕가에서 소외된 이복형 유탈(劉梲)이 원한을 품고 태자로서 뒤를 이은 유발의 죄상을 무제에게 고발하여 무제는 상산국을 폐지하였다. 몇 달 후, 무제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유상의 이복형 유평에게 상산헌왕의 가계를 잇게 하고, 유상에게는 동해군의 3만 호를 분할하여 사수나라를 설치하고 왕으로 봉했다.[2][3][4] 사수나라의 서울은 담(郯)에 두었다.[5]

2. 2. 사수왕 재위와 사망

무제는 원정 3년(기원전 114년), 아버지가 죽자 왕가에서 철저히 소외된 서형 유탈(劉梲)이 원한을 품고 태자로서 뒤를 이은 유발의 죄상을 고해바쳐 왕국을 폐지했다.[1] 몇 달 후 무제는 이를 불쌍히 여겨 형 유평에게 상산헌왕의 가계를 잇게 했고, 유상 자신은 동해군에서 3만 호를 갈라 받아 사수나라의 왕이 되었다.[2][3][4] 서울은 담(郯)에 두었다.[5]

사수사왕 12년(기원전 103년)에 사망하였고, 아들 사수애왕 유안세가 뒤를 이었다.[6]

참조

[1] 문서 사기 한흥이래제후왕표, 오종세가, 한서 무제기, 제후왕표 등을 따른 것으로, 한서 경십삼왕전에서는 상산헌왕 33년 = 원정 4년(기원전 113년)이라 한다.
[2] 서적 한서 권53 경십삼왕전제23
[3] 서적 한서 권14 제후왕표제2
[4] 문서 《사기》 한흥이래제후왕표와 오종세가에서는 유상이 사수왕이 된 것은 원정 4년(기원전 113년)이라 한다.
[5] 서적 사기 권17 한흥이래제후왕표제5
[6] 문서 한서 경십삼왕전을 따른 것으로, 사기 오종세가에서는 사수사왕 11년에 죽었다 하나 오종세가의 즉위년이 경십삼왕전보다 1년 늦으므로 몰년은 같다. 한서 제후왕표에서는 15년이라 하나 二가 五로 잘못된 것 같다. 사기 한흥이래제후왕표에서는 사수사왕 10년(기원전 104년)에 죽었다 한다.
[7] 문서 여나라가 도중에 제천나라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, [[유명 (제천왕)|유명]]이 봉해진 [[진류군|제천나라]]와는 연관이 없다.
[8] 문서 작위만 추증된 것으로, 봉지는 없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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